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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여배우 설 곳 없다, ‘남자영화’ 릴레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충무로에 여배우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남자 캐릭터를 내세우는 영화들만 주로 기획돼 여배우들이 부각될 기회가 제한되고 있다는 설명. 좋게 말해 '남자배우 전성시대'지만 뒤집어보면 '여배우 수난시대'이기도 하다. 올해 큰 인기를 모은 '7번방의 선물' '베를린' '신세계' 등의 작품 역시 오롯히 '남자영화'다. 현재 상영중인 '파파로티' '사이코 메트리' 역시 각각 두 명의 남자주인공들을 내세웠다. 그나마 여자주인공의 활약이 도드라진 로맨틱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는 흥행에 참패했다. 그렇다면, '여배우 수난시대'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또 그 이유는 뭘까. ▶'여자영화' 찾아보기 힘들고 흥행도 어려워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여배우를 부각시켜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는 '은교' '내 아내의 모든 것' '후궁:제왕의 첩'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각각 김고은·임수정·조여정 등 여주인공을 타이틀롤로 내세운 작품으로 개봉 당시 화제가 됐다. 박보영이 출연한 '늑대소년'과 한효주 주연의 '반창꼬', 이요원이 열연한 '용의자 X' 등 멜로 성격이 강한 영화와 조민수를 화제의 인물로 만든 '피에타'도 여배우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준 영화다. '음치클리닉' '미쓰GO' '코리아' '자칼이 온다' 등의 작품은 아쉽게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성공한 작품들만 살펴보면 나쁘지 않은 성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해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 중 여배우들이 부각됐다고 할만한 작품들은 앞서 소개한 10여편이 전부다. 그 외의 영화들은 모두 남자캐릭터들을 중심에 내세웠다. 여자 캐릭터는 주로 남자 주인공을 받쳐주는 '보조' 역할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톱스타급 여배우들도 주연급 배우들이 동시에 출연하는 이른바 '멀티캐스팅' 영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지현이 '도둑들'과 '베를린'에 출연하고 손예진이 '타워'에 모습을 보인 게 좋은 예다. 전지현처럼 남자스타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보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출연분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올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않다. 김민희가 주연을 맡은 '연애의 온도'가 21일 개봉후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는 미지수. 하지만, '연애의 온도' 이후의 개봉예정작 중 '여자영화'를 찾아보는건 쉽지않다. 5월 개봉예정인 최강희 주연의 '미나 문방구', 하반기에 공개되는 전도연 주연작 '집으로 가는 길' 정도가 유일하다. 그외에는 남자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촬영이 진행중인 '명량:회오리 바다'는 최민식과 류승룡을 투톱으로 캐스팅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하정우를, '관상'에서는 송강호와 이정재·백윤식 등이 극을 이끈다.4월 개봉하는 '전설의 주먹'도 남자 캐릭터만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이 쯤 되니 영화계 전반에서도 여배우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여배우들이 출연할 영화가 없다. 간혹 여자 캐릭터가 부각되는 시나리오가 나온다고해도 경쟁률이 너무 치열하다.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는 여배우들이 넘쳐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티켓파워 가진 여배우 드물어, 아기자기한 '여자영화'도 안 통해 영화계 관계자들은 충무로에서 '남자영화'가 득세하고 있는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첫번째는 환경적인 요인이다. 경제불황 등으로 인해 팍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관객들이 아기자기한 내용이 부각되는 '여자영화'보다 화끈한 작품을 찾고 있다는 것. 이창현 CJ E&M 영화부문 홍보팀장은 "현실에서 머리 아픈 일을 겪고 있는 관객들이 소위 '센' 영화들을 통해 위안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신나는 액션영화, 또는 속이 뻥 뚫리도록 울려주는 작품이 잘 어울린다. 오히려 여자 캐릭터가 부각되는 알콩달콩한 영화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관객들의 선호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자연스레 충무로 제작사들의 기획방향도 '남자영화'로 돌아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켓파워를 가진 여배우가 드물다는 사실도 주된 이유다. 임성규 롯데시네마 홍보팀장은 "사실 지금 영화계에서 '흥행보증수표'라고 불릴만한 배우를 찾는건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호감도가 높은 배우들은 분명 존재한다. 현재로선 호감도로 관객몰이를 할 수 있는 배우들 중 대부분이 남자다. 그렇다보니 아예 남자 주인공이 중심이 되는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개발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특정 남자배우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쓰는 예도 있다"고 전했다. 한 때는 '여자관객을 잡아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말이 돌았던 것도 사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인어공주' 등 여자들의 실생활을 잘 반영한 작품들이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극장을 찾는 관객 연령대 폭이 넓어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데이트족 뿐 아니라 40대 남자들까지 끌어들일수 있는 내용이 절실해졌다. 이창현 팀장은 "남자배우 중에서도 20대가 아닌 30·40대가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이 나이대의 남자 캐릭터는 아버지에 대한 감성을 자극할수도 있고 동 연령대의 공감을 끌어낼수도 있다. 그만큼 타겟층이 넓다는 말"이라고 분석했다.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2013.03.20 07:00